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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감사, 행복)

미용실이 아닌 이발소에 다닌다

by 웜슈트 2024. 9. 27.
미용실을 안 간지 5~6년이 된 것 같다.
감성적인 입구
내 나이 또래에 나처럼 이발소에 다니는 친구를 본 적 없다. 친구를 만날 때마다 이발소의 장점을 설파한다. 설득은 되지 않는다.
군대에서 짧은 머리를 처음해보았다. 남들은 휴가 때마다 머리를 길러 나가고 싶어했다. 나는 짧은 머리의 강인함에 매력을 느꼈다. 옛날부터 애처럼 보이는게 싫었던 나다. 그리고 개성있는 걸 좋아하다 보니, 남들과 비슷한 머리는 하기 싫었다. 그렇게 나는 병장이 돼도, 머리를 짧게 짤랐다. 마지막 휴가 때는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다듬고 부대에 들어갔다. 사회인 된다고, 부대 내 후임한텐 머리를 맡기긴 싫었나 보다. 아무튼 이때부터 내 인생 이발소의 시작이다. 
명동이용원
아, 정확이 말하면 이용원이다. 이발소는 면도를 해주지 않는 대신 이용원은 구렛나루, 귀, 목 뒤 등의 잔털을 면도 해준다. 아마 수염이 많으면 수염의 면도도 해줄거다. 이용원은 바버샵과 비슷하다. 장비나 인테리어, 위생적인 부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측면은 이용원의 아저씨들이 더 좋을 수 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무시 못한다. 비용적인 측면에서, 이용원이 바버샵보다 훨씬 싸다. 이용원은 아무리 비싸도 20000원이 넘지 않는다. 8000원인 곳도 있고, 10000원 인곳도 있고, 15000원인 곳도 있다. 바버샵은 기본 35000원 이상을 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성비 이용원을 선택했다. 군대를 갓 전역하고 돈이 어디있겠는가. 이용원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기에 아직도 이용원을 다닌다.
한 군데만 다닐 줄 알았는데, 세월이 지나며 다니는 이발소도 바뀐다. 이용원을 블루클럽같은 이발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용원은 가는데 마다 인테리어가 다르고, 분위기가 다르다. 이용원은 사장님 인생의 색깔이 투영된 곳이다.
‘사자 이용원’은 공장식이다. 2명의 이용사가 엄청난 속도로 동네 사람들의 머리를 짜른다.
‘독수리 이용원’은 아저씨가 낭만이 있다. 가면 항상 예전 트로트가 나온다. 손님이 없을 떈, 마이크를 노래방 기기에 연결해 노래를 부르신다. 그리고 그걸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신다. 어느날 갔더니 나에게 구독 요청을 하시더라. 그래서 그 자리에서 구독을 누르고 “아저씨 화이팅 입니다.” 응원해주었다. 근데 깎아주진 않더라. 약간 기대했는데 ㅎㅎ
‘올림픽 이용원’은 아저씨가 올림픽 메달 딴 것에 자부심이 있다. 예전에 기능 올림픽이 있었다. 거기서 아저씨는 이발로 메달을 땄다. 세계적인 무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대단하시다. 한동안  올림픽 메달 수상자라니 “폼미쳤다” 하며 가장 자주갔던 동네 이용원이었다. 요즘은 가격이슈로 잘 가지 않는다.
‘목욕탕 이용원’은 목욕탕 안에 있다. 습기찬 탕 안 아저씨가 있는 건 아니다. 옷을 벗는 락카룸이 있는 공간 구석에 조그맣게 있다. 목욕탕에는 헬스장도 있었다. 운동하고, 사우나하러 가고 싶을 때마다 이곳에서 종종 머리를 짤랐다. '목욕탕 이용원'은 머리짜르고 바로 씻을 수 있다는 굉장한 메리트가 있다. 
최근에 다니는 곳은 ‘명동이용원’이다. 위치는 명동과 아무 상관없는데 명동이용원이다. 여기의 특징은 머리를 감겨준다는 것이다. 이용원 같은 경우, 대부분 자기가 직접 머리를 감아야 하거나, 돈을 더 내야만 머리를 감을 수 있나. 주로 한 분만 머리를 자르다 보니, 한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는 건 추가로 시간이 든다. 다음 손님은 그만큼 기다려야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용원이 머리를 감겨주지 않는 것 같다. 미용실과 아주 큰 차이점이다.

머리 감는 곳

이 이용원은 사장님 아내 분이 머리를 직접 감겨준다. 그렇다고 추가로 내는 돈은 없다. 머리 자른 곳에서 고개를 숙이면 바로 세면대가 있다. 거기서 그냥 바로 감는다. 손으로 직접 세수도 시켜준다. 처음에는 세수를 당한게 오랜만이어서, 좀 당황스러웠는데, 어렸을 때 할머니가 머리감겨주는 느낌이 있다. 거칠고 투박함 속에 사랑과 정이 있다.
여태 내가 다녔던 이용원 중 여기 사장님이 가장 연로하신 것 같다. 얼핏 들었을 때 40년대 생이신 것 같다. 그럼에도, 어느 곳보다 최선을 다해 한 올 한 올 머리를 다듬어 준다. 회전율에만 집착하는 다른 곳과의 차이점이다. 다만, 사람이 좀 있을 떄는 기다림을 감수해야 한다. 대부분의 이용원에는 신문이 있다. 나는 신문보는 걸 좋아한다. 기다릴 떈, 신문을 읽으면 된다.

 

신문이 있는 이용원

 


이 공간에 있으면 잠깐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다. 아무 생각없이 있는 동안 위안을 받는다.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이런 점이 나를 미용실이 아닌 이용원으로 이끈 것 같다. 요구사항이 있을 떄에도 엄마, 아빠한테 얘기하는 것처럼 편하게 말하게 된다.
오늘도 사람이 조금 앞에 있어, 신문을 보며 기달렸다. 너무 오래기다리는 듯 보였는지, 사모님이 주스 한 잔을 주셨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남들과 나누고 싶어한다. 맛있는 걸 먹으면, 먹어보라 하고, 재밌는 게 있으면, 같이하자 한다. 나한텐 이용원이 그런 곳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이곳에 가면 케어받는 느낌이 있다. 가면, 항상 밝에 인사해주고, 머리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주신다. 감사하다. 나의 이러한 감정을 남들도 느끼길 바라서 자꾸 얘기하는 것 같다.  
이용원은 완벽하지 않다. 머리도 막 감겨준다. 가위랑 바리깡은 소독 잘 안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매력이 있다.
우리도 꼭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가치를 알고,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면, 우리를 사랑해 줄 누군가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완벽해보일려고 포장할 필요도 없고, 오바할 필요도 없다.  
 

갬성 있는 인테리어
수기로 작성된 자격증

바버샵 가고 싶으면, 이용원 가봐 칭구들
자르고 싶은 스타일이 있으면, 사진을 당당하게 보여줘
부모님의 마음으로 잘 잘라주실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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